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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 화학상은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복잡하고 큰 분자의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을 개발해 응용을 가능하게 한 세 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생화학 및 화학과의 아리에 워셜 교수를 비롯해 하버드대 화학과의 마틴 카플러스 교수, 스탠퍼드대 구조생물학과의 마이클 레비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특별히도 이번 수상자 중 아리에 워셜 교수는 지난 10월 28~29일 고려대에서 진행한 미래과학콘서트에 초청돼 국내 예비 과학도들과 뜻깊은 만남을 갖기도 했다.

특히 카플러스 연구실에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참(CHARMM)’은 화학은 물론 생명과학과 소재공학 분야에 실로 큰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이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안겼을까.

포켓볼 열다섯 개가 당구대 위에 놓여 있다. 큐대를 들어 흰 공을 치면 열다섯 개 공이 어떻게 움직일까. 분자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원자들은 당구대 위의 포켓볼처럼 복잡하고 어지럽게 움직인다. 수천, 수만, 때로는 수백만 개의 공이 3차원 공간에 놓여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X-선 회절기, 핵자기 공명 분광기, 극저온 고성능 전자현미경 등 실험기기가 개발되면서 간단한 결정과 나노 구조체는 물론 단백질이나 핵산 같은 복잡한 생체 분자의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포켓볼로 치면 처음에 공이 놓인 위치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을 쳤을 때 전체 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분자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전체 원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예측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분야에서 첫 번째 큰 업적이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과의 존 포플 교수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의 월터 콘 교수가 만든 ‘가우시안’이다.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양자화학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분자구조만 알면 가우시안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전자들의 상태와 에너지를 쉽게 계산할 수 있어 지금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개발자들은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우시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양자역학으로 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원자수가 100개 정도의 비교적 작은 분자들의 에너지를 계산하는데 적합하다. 생체 분자 중에는 원자가 수만 개 이상인 고분자가 수없이 많다. 이런 고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1970년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역시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카플러스 교수는 산소 분자와 헤모글로빈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었다. 헤모글로빈은 9,500여 개의 원자를 가진 고분자다. 헤모글로빈과 산소가 결합할 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지만, 기존 가우시안으로는 불가능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고분자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를 방문했다. 당시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분자가 상호작용할 때 생기는 포텐셜 에너지 변화를 연구하고 있던 워셜 교수는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을 프로그램에 나눠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전자인 파이(π) 전자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분석하고, 원자 간 결합에 이용되는 시그마(σ) 전자와 원자핵에는 고전물리학의 뉴턴역학을 적용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1972년 카플러스 교수와 워셜 교수는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식을 발표했다. 이번 화학상의 업적인 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라이소자임 반응을 연구한 레비트 교수와 워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1976년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분자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모델을 발표했다. 이로써 닫혀있던 새장을 활짝 열어준 것처럼 참은 훨씬 광범위한 연구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즈음이면 참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 이름이 없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고만 불렸다. 참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은 건 1983년 카플러스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현재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연구실에서 참을 사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부터 단백질이나 핵산, 생체막과 같은 생체 분자 연구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나노 구조체의 분자 모델을 만들거나 실리콘 웨이퍼의 증착 반응을 연구하는 데도 참은 꼭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컴퓨터 안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필자를 비롯해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과 연구원 대부분이 참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참의 초기 버전을 발전시켜 앰버(AMBER), 그로모스(GROMOS), 엑스-플로어(X-PLOR)와 같은 분자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유사한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제공했다. 현재까지 연구자 80여 명이 소스코드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50여 개 연구실이 참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참 개발 회의에서 참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있다.

컴퓨터가 발전하는 만큼 참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연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70년대 중반에는 원자 892개로 이뤄진 BPTI라는 효소 억제제를 연구했다면 지금은 원자 10만 개가 넘는 리보솜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한양대는 미국국립보건연구소와 하버드대, 미시간대와 함께 참을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필요한 경우 분자를 적절히 분할한 다음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분산처리 할 수 있는 코드가 이미 개발돼 있다. 공동 연구를 통해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은 컴퓨터 메모리가 허용하는 한 분자계의 크기에 제한받지 않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 유기체의 모든 원자들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 이온까지 포함해 실제에 가깝게 분자들의 화학반응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DNA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이온 채널, ATP 분해효소와 같은 인체 내 다양한 생명 반응 또한 연구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세포 내 소기관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연구에도 참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참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글 원영도 – 한양대 화학과 교수
제공처 KISTI http://www.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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